취미는 독서/책읽기

성수선의 삶과 책이야기, 밑줄 긋는 여자

멀랜다 2019. 3. 2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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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책이 연결될 수 있을까? 만약 서로 연결될 수 있다면 어떻게 연결될까? 내가 보는 이 책이 삶에서 어떻게 녹아들고, 또 생각 속에서 어떻게 자라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책을 보면서 항상 드는 생각이다.


책이 단순한 유희로써 기능한다고 해도, 그 정도 역할을 해낸다고 해도,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책을 통해 얻는 즐거움도 무시 못 할 책의 효용가치라 할 수 있을 테니깐.


그렇다고 해도,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책이 단순한 유희만 있다면 '책을 읽어한다'라는 꼰대(?)와 같은 권면이 설명되지 않는다(우리는 '영화를 봐야 한다', 'TV를 봐야 한다'라는 말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유희를 넘어선 책의 효용성은 어디에 있을까! 이 고민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결점을 제시해 주는 책이 있다. 바로 성수선의 "밑줄 긋는 여자"라는 책이다.


이 책은 독서에세이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서평이 아닌, 감상문이 아닌, 에세이다. 책과 삶이 버무려진 하나하나의 이야기다.



대체로 형식은 이렇다.


삶에 대한 에피소드 --> 읽었던 책 인용 --> 실제 삶과 책을 잃었을 때 느꼈던 감정, 느낌 등을 풀어놓음 --> 정리.



예를 들면,


소개팅한 남자가 일이 있어 강아지를 맡게 되었다. 강아지가 몸을 심하게 긁어 병원에 갔는데, 강아지는 심한 피부질환에 걸려 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강아지를 맡긴 소개팅남은 강아지의 성별까지 다르게 알고 있었다. 그 소개팅남은 빈집에 들어가기 싫어 돌보지도 않으며 강아지를 방치 상태로 키웠다는 것.


이후 아사다 지로의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이라는 책을 통해 그 강아지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은 평범한 삶을 살다가 갑자기 죽어 심판대 앞에 선 쓰바키야마 과장의 이야기다. 그는 하늘에서 '음행의 죄'를 지었다는 판정을 받는다.



음행이란 건 결코 불륜이나 이상한 성행위나 금전에 의한 육체의 매매가 아닙니다. 자신의 행위에 의해 상대방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느냐,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상대의 진심을 이용하지 않았느냐, 이것이 바로 음행의 정의입니다.



쓰바키야마는 도모코라는 친구와 18년 동안 편하고 편리한, 부담 없는 섹스파트너 관계로 지냈다. 그리고 어느 날, 도모코와 함께한 침대위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 소식을 알리고, 도모코를 떠난다.


작가는 다시 자신의 외로움을 위해 강아지를 방치한 소개팅남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그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은 소개팅남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돌아본다.



내가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사귈 생각도 없는 남자를 스페어타이어처럼 묶어두고 다녔다. 그것도 몇 번이나. 난 그들을 '희망고문'했다. 쓰바키야마 과장, 마이콜(소개팅남이 맡긴 강아지의 이름이 마이콜이다)의 주인, 나, 모두 더하고 덜하고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군가의 진심을 이용했다.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외로울 때는 그냥 외로워야 하는데 애꿎은 누군가를 괴롭혔다. 부끄럽고 또 많이 미안하다. 



이 책은 이러한 에피소드들을 차곡차곡 모아 엮어 놓았다. 실제 삶이 다양한 이야기의 연속이듯 엮인 글들 또한 다채롭게 연결되어 펼쳐진다.


심지어 글들이 재미있다는 그 어려운 걸 해낸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소설 글쓰기를 공부한 작가의 노력이 이 책에 녹아들어 재미라는 또 다른 선물을 풀어놓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 책 뒷부분에는 '책 속 밑줄 긋기'라는 부록이 달려있다. 각 이야기에서 인용했던 책의 정보와 인용했던 내용을 따로 분리해 놓았다. 책을 읽기 전 이 부분을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타인이 그어놓은 밑줄은 그 사람의 마음을 미리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열쇠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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