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독서/책읽기

아날로그의 반격, 데이비스 색스

멀랜다 2019. 4. 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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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코닥 엑타크롬 필름이 단종 되었다. 코닥에서 가장 선명하고 발색이 좋았던 슬라이드 필름이 디지털에 밀려 단종된 것이다.


이미 사진을 업으로 삼던 이들은 디지털로 전환을 마친 상태였고, 취미로 사진을 찍던 동호인들도 상당수가 디지털로 옮겨간 상태였다. 그래서 코닥 크롬이 단종된다는 사실에도 사진 업계에 큰 충격이나 타격은 없었다.


하지만 코닥의 슬라이드 필름 단종이 가슴 아픈 이가 있었으니, 바로 지인 M이다. 풍경사진을 주로 찍던 M은 코닥크롬의 열렬한 지지자 였다. 슬라이드 필름에 발색되어 나오는 그 선명한 형상을 루뻬와 슬라이드 환등기로 보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M은 마지막 코닥 엑타크롬 필름 물량이 국내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 그 마지막 필름 매입이라는 거대한 미션(?)을 주게 된다.


나는 M의 미래 사진 활동을 위한 필름 매입 작업에 착수해, 마지막으로 수입된 필름을 사들였다. 4개 필름 판매점을 돌아 M이 원하는 수량을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구입한 필름의 양은 농구공이 3개는 들어갈 만한 큰 가방 2개를 가득 채울 정도였고, 필름 가격은 무려 5백만 원이 넘었다.


필름은 온도에 민감하다. 높은 온도에 오래 노출되면 필름이 변질된다. 발색이 옅어지고, 특정 색깔이 이상적으로 나오게 된다. 그래서 보관이 중요하다.


M은 필름보관을 위해 초대형 양문형 냉장고를 새로 샀다. 그리고 그 필름은 아직 여전히 냉장고에 보관중이다.


아마 몇 년 동안 국내에서 코닥 엑타크롬 필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큰손(?) 이었을 것이다. 2013년 국내 마지막 물량을 거의 싹쓸이 했으니 큰손이라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그 큰손도 의미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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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코닥에서 공식적으로 엑타 크롬을 재 출시 했다. 


M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6년 전에 출시된 필름 수백 롤과 대형 양문형 냉장고만 남게 되었다.







이 책에 따르면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아날로그 산업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레코드판, 종이, 인쇄물, 필름 등 쇠퇴했던 아날로그 분야가 다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데이터와 사례를 보면 분명 하향 곡선을 그렸던 아날로그 산업이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처럼 '반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날로그의 회귀적인 성장이 '반격'이라는 말을 사용할 정도로 혁명적일까. 책 제목을 보고, 디지털시대의 종식을 선언하는 것인가 하는 오해 아닌 오해를 했다.


이 책을 읽어 나가며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대결이 아닌 목적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날로그는 과정을 즐기며 결과를 얻는 그 무엇이라면, 디지털은 빠른 과정을 통해 그 결과를 얻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적절한 타협과 취향을 통한 선택이라고.


레크드판에서 나오는 소리를 디지털로 똑같이 재생하면 구별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후 필름에서 나오는 화질로 리터칭하면 필름을 통해 나온 화상인지, 디지털 CCD를 통해 나온 화상인지 구별할 수 있을까. 그 구별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과를 놓고 보면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구별이 모호하다.


필름 사진 또한 엄밀히 이야기하면 완전한 아날로그가 아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구별이 모호한 상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사진을 인화할 경우 필름 사진은 "아날로그 --> 디지털 --> 아날로그"의 과정을 거친다. 촬영된 필름은 약품을 통한 현상과정을 거치면 상이 맺힌 필름(슬라이드 또는 네거티브) 상태가 된다. 이 필름은 스캐너를 통해 디지털 파일화 된다(인터넷 상의 사진은 이 과정까지만). 그리고 이 디지털 파일은 다시 인화기를 통해 종이에 인화 되어 우리가 보는 사진이 된다.


아날로그가 새롭게 떠오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날로그의 반격"이라고 다시 아날로그의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로 몰입되었다 이제 아날로그와 균형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를 포함해 누구도 디지털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누구도 자신의 휴대전화를 연못에 던져 넣거나 디지털 네트워크 밖에서 살려고 하지는 않는다. 완전히 아날로그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매력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완전히 디지털적으로만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상적인 삶은, 그리고 <<아날로그의 반격>>이 주장하는 것은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다.



결국 이상적인 삶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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