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독서/책읽기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 김보통

멀랜다 2018. 5. 1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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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이 들려주는 대체로 우습고, 때때로 찡한 이야기



도서관에 강의하러 오신 선생님께서 여행 취재 이야기를 하면서 들려준 이야기다. 실화다.



어느 외딴 곳에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셨다. 할머니 나이는 여든이 넘었다. 할머니는 열일곱에 시집가 그 산골에서 평생 사셨다. 밭을 일구고, 시부모님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셨다. 성실, 보람, 열심 등 좋은 감정이 들게 한 단어들이 가슴을 스친다. 할머니의 시부모님, 할머니가 키우신 아이들 그리고 나의 눈에도 별 탈 없이 무난해 보이는 삶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시집간 후 평생 집 밖으로 외출하신 게 일곱 번이 되지 않는다.

 


스무 살이 안 된 나이에 시집가서 60년 넘게 살면서 집 밖 외출이 7일이 안 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이정도 되면 성실, 보람, 열심과 같은 좋은 감정의 단어는 먹먹한 가슴에 묻힌다. 할머니는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이야기는 어쩌면 김보통의 마음과도 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은 시대의 흐름 때문이건, 필연적인 과정의 결과이건 '이쯤에서 퇴장하겠습니다.'라는 작별 인사도 전하지 못한 채 사라져야 했던 것들에게 보내는 뒤늦은 인사입니다. 이미 인사를 받아줄 대상은 모두 사라져 홀로 손을 흔드는 꼴이라 조금 서글프지만, 산다는 것은 대체로 그런 법이지요.


저자가 스스로 이야기 하듯 우린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또 필연적으로 시간 속에서도 사라지는 존재다. 인사도 없이 그냥 떠날지도 모른 그런 유한한 존재인 것이다.


삶의 고민은 여기서 다시 시작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모두 각자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회적으로 타인이 욕망하는 열망 속에서 살아가는 게 현실이다.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 자식을 낳고, 집을 사고, 또 그 자식이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 자식을 낳고……. 이 모든 게 자신이 원하는 삶인지, 아니면 타인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지 고민해 볼 일이다.


인생에 답은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정한 삶의 방식이라면 그 자체로 자신의 인생임을 인정하고 살아가면 된다. 저자의 말대로 '인생은 그저 맥락 없이 흘러갈 뿐'이니까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행복은 바나나와 같다. 그렇다. 행복은 취향과 선택에 대한 만족의 문제다. 누구도 바나나보다 맛있는 과일이 있다고, 바나나를 가장 좋아한다고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취향과 만족에 대해 타인이 함부로 말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저자의 담담하게 돌아보는 인생기를 보며 내린 나의 결론은 하나다. 


할머니는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놀라울 정도로 가볍고 보드랍고, 주름진 손이었다. 솜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젊은이도 놀아.”하고 그녀는 말했다. 마치 숨겨진 인생의 비밀을 알려주려는 것처럼. ...... 그녀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녀들의 몫까지 놀아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금강산은 못 가지만, 들로 산으로 바다로 강으로 계곡으로 평야로 항상 그녀들을 기리며, 그 몫까지 필사적으로 놀아야겠다고, 나는 다짐한다. 그러니, 당신도.



그래 나도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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