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김현철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MBC 라디오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에 출현하면서 부터다. 김어준이 말하는 무학의 통찰을 배운사람의 이론으로 친절하게 설명해준 것. 나름 쓸만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여러 의혹속에서 방송이 개편되고 그의 방송 활동도 의도치 않게 마감했다.
하지만 이후 무한도전에 출연할줄 누가 알았을까. 무한도전에 출연한 그는 한동안 무한도전 정신과 의사로 유명해진다. '정신과의사 김현철'을 검색하면 '무한도전 정신과의사'가 지금도 연관 검색어로 나온다.
최근에는 배우 유아인 관련 SNS로 네티즌의 손가락질을 받은 것으로 더 유명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가 날린 트윗을 보면 비난을 위한 것이 아니고 조언해주기 위함이라는 의도로 파악되지만 유아인의 팬들과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오지랖으로 받아 들이는 분위기다.
여기서 주목할 점. 만약 김현철이 지금 이시대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이슈가 되었겠는가 이다. 그의 SNS가 이슈가되고 다시 대응이 이슈가 되고 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문가로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에게 유명해지면 상품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유명해진 사람이 전문가라면 그 전문가가 쓴 책도 자연스럽게 상품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을 여행하는 초심자를 위한 안내서'는 시장에 기민하게 반응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저자의 인기와 함께하는 책.
이 책은 마음, 상처, 애도, 가족, 사회, 연애, 성공, 생존이라는 8장으로 구성됐다. 각 장의 주제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쓴 것은 아니고 간략한 메모로 구성했다. 한 페이지에 메모 하나.
이 책은 무려 기록된 페이지 숫자만 359. 꽤 두꺼운 책이다. 하지만 큰 폰트에 메모 하나 들어가 있는 페이지 구성이라 페이지 수와 양이 비례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먹이는 넘기기 쉬운 물약같은 느낌이 들지만 희석된 물약에는 적지 않은 내공이 담겨있다. 한 줄 한 줄 곱씹으며 틈틈히 읽으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공포를 일으키는 본질은 외부 대상이 아니라 내면의 감정이다. p 57
의리에 대한 집착은 배신에 대한 지나친 혐오 때문이다. 우린 배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배신을 통해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p 102
'사랑받는 며느리'만큼 허황된 꿈도 없다. p 121
성격차이로 이혼한다고 하는데 똑같으면 결혼할 이유 역시 없다. p 140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허전하다면 그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본질을 제대로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 p 222
상대방의 잘못을 유도해서라도 둘 간의 냉기를 지속시키는 이유는 그를 향한 분노를 정당화시키기 위함이다. p 248
삶의 좌우명이 없는 사람이 제일 강하다. p 272
문장의 핵심을 조금 더 이해하려면 기본 지식이 조금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전문가의 간단한 메모도 사실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니까.
이 책은 꽤 팔렸다. 유치원 버스를 연상시키는 노란색 표지와 디자인은 책을 뽑아 들기 상당히 망설이게 한다. '안내서'라는 제목에 맞게 교통 표지판 모양을 가져온 것으로 보이지만 디자인이 너무 숨김 없는 원색적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이 책의 후속으로 보이는 '세상을 여행...안내서'는 빨간색, 초록색이다). 어찌되었든 이 책은 1쇄 발행 후 6개월만에 4쇄를 넘겼다.
여러가지 어설픔이 있지만 넘겨보다 문장에 꽂히면 살 수 있는 책이다.
최근 김현철의 책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조금 한가해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업이후 남는 시간을 활용해 책을 쓰고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 어떤 상황에서 책이 나오든 그간 방송에서 보여준 그의 상담 내용과 내담자에 대한 분석력이 책을 통해 나온다는 것은 반길만한 일이다.
정신과의사 김현철 책에 대한 정주행은 이 책으로 시작하면 좋다. 짧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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