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독서/책읽기

당신을 믿어요. 김유나.

멀랜다 2020. 5. 1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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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나 작가를 처음 만난 건 유튜브 세바시 강연이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작가라로 할까! 강연이 매끄러웠다. 15분 남짓 주어진 시간에 충실했고, 이야기 전개가 자연스러웠고, 강연 주제도 명확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강연 자체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강연하는 목소리였다. 말이 참 곱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단지 목소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말에 진심을 담아 말을 꼭꼭 씹어 전달하는 소리가 참 고왔다.


좋은 부모 밑에서 좋은 환경,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구김없는 삶이 목소리에 묻어났다. 어쩜 이리 말이 이쁠까! 말그릇이라는 책 저자 답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반전!!


"당신을 믿어요"라는 국방색(?) 표지의 책을 읽고 알게된 반전 사실이다. 사실은 작가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쉽지 않은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이었다.



나는 유독 돈 앞에서 부끄러웠던 기억이 많다. 초등학교 5학년때 일이다. 어릴 때는 공부도 곧잘 하고 야무지게 말을 해서, 각종 발표 일을 도맡아 하고 글쓰기 대회에서도 상을 받아 챙기는 아이였다. 그러다 보니 얼굴이 제법 알려져 있었고, 선생님들도 이곳 저곳에서 찾는 통에 여러 반을 기웃거리던 해였다. ... 선생님에게 목례를 하자 놀란 눈빛으로 답을 하고는 말씀하셨다. 우리 네 명이 5학년 중에서 아직도 육성회비를 못 낸 아이들이라는 설명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울면서 "7살 때 엄마와 헤어졌습니다"로 시작하는 짧은 에세이를 썼다. 누가 볼지 모르는 이 작은 종이에 드라마를 쓴다는 일이 슬프로 웃겼다. 이것을 증명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기막혔다. 그 사람은 이런 막장 드라마를 한 달이면 몇 편이나 볼까?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답게 기승전결 흐름을 맞추어가면서 "그래서 이 분은 국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를 한 번 더 강조하며 끝을 맺었다.



돈이 없어 육성회비를 밀려 교무실에 불려가고, 가정은 7살에 파탄이 나는 쉽지 않은 삶. 작가의 어린시절의 삶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어린시절의 환경에서의 경험은 성장하면서 이후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작가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았다.


어려움을 이기고 들꽃처럼 피어난 사람들에겐 높은 투지가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이 투지는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후가 중요하다. 그 투지를 어떻게 승화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인생을 투지로 계속 태워 소진시키느냐, 다시 그 투지를 돌아보고 자신을 찾느냐, 하는 선택.


이 책은 그러한 작가의 삶을 담고있다. 고운 말그릇을 가지게 된 작가의 성장기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작가는 여러 사람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건넨다.



열등감에 쩔고, 우월감에 우쭐하고, 불안함에 소리를 지른들 뭐 어떤가. 결국 우리는 그곳을 빠져나오려 힘을 낼 것이고, 누군가는 도울 것이며, 다시 웃다 울다 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 당신은 '진짜 여행자'가 되어갈 것이다. 언젠가 구멍에 다시 빠졌을 때, 그 깊이가 겨우 발목까지 오는 것을 깨닫고 가볍게 웃게 될지 모른다.

오래 울었던 당신,

정말 수고했다.



오랜만에 코 끝이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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